2023년 4월 27일 목요일

민물 장어의 꿈_신해철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저 강물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익숙해 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 마저 두려울 뿐인데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2023년 4월 24일 월요일

죽을 때 가장 많이 하는 후회


죽을 때 가장 많이 하는 후회

1. 수많은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온 것.

2. 어떤 하나에 몰두해보지 않은 것.

3. 좀 더 도전적으로 살지 못한 것.

4. 내 감정을 솔직하게 주위 사람들에게 표현하지 못한 것.

5. 나의 삶이 아닌, 주위 사람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 온 것.

6.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것.

7. 친구들에게 더 자주 연락하지 못한 것.

8. 자신감 있게 살지 못한 것.

9. 세상의 많은 나라를 경험해보지 못한 것.

10. 결국 행복은 내 선택이라는 걸 이제 알았다는 것.

2023년 4월 21일 금요일

나는 어떻게 시장을 이겼나_에드워드 소프 저

 


: 섀넌의 집에서 룰렛 연구를 하다가 저녁식사를 하던 중에, 그가 내게 인생에서 이 연구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지 물었다. 그때 내가 떠올린 것들은 그의 생각과도 상당히 같았을 것이다. 사회적 인정, 박수갈채, 명예는 환영할 만하고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하겠지만 최종적으로 추구할 대상은 아니다. 지금도 그렇듯 나는 그때 알았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 어떤 시간을 보내고 누구와 그 시간을 보내는가였다.

: 개별적으로는 유리한 베팅이라고 하더라도 과도한 베팅은 파멸로 이어질 수 있다. 안전하게 게임을 하며 지나치게 적게 베팅하는 것 역시 돈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나는 위험을 줄이는 것을 내 투자 접근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았다.

: PNP를 정리할 때 비비안과 내게는 평생 쓸 만큼 충분한 돈이 있었다. PNP의 마지막은 우리 모두에게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수 십억 달러에 달하는 미래 자산이 사라졌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바로 우리 부부, 사랑하는 가족,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여행하고, 흥미로운 분야를 추구하는 일이다. 비비안과 나는 "즐겨라(벌써 생각보다 늦었다)" 라는 노래 가사를 마음에 새기고, 우리가 충분히 가질 수 없었던 한 가지, 바로 함께하는 시간을 최대한 즐기려고 했다. 월스트리트에서 성공은 최대한 많은 돈을 버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성공은 멋지게 사는 것이었다.

: 배우자 문제 - 가장 좋은 전략은 후보 가운데 약 37%를 볼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음 사람 가운데 앞서 제외시킨 37페선트 후보들보다 낫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다.

: 컴퓨터는 우리 모델을 이용해 뉴욕증권거래소와 아멕스에서 가장 거래량이 많은 1,000여 개 종목의  '적정' 주가를 매일 산출한다…. 실제 주가와 적정 주가의 괴리가 충분할 경우 우리는 저평가된 주식은 매수하고 고평가된 주식은 매도한다.(공매도를 할 수도 있겠다)

: 카지노가 이기는 원인을 알면 도박에 빠지는 대신 가볍게 즐기는 수준으로 손실을 제한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오늘날 도박은 무지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손실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에게서 돈을 빨아들이며 사회를 갉아먹는다.

: 인생은 소설을 읽거나 마라톤 경주를 하는 것과 같다. 인생은 목표에 도달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여정 그 자체이고 그 과정에서의 경험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말했듯 "시간은 삶을 만드는 재료"이고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나는 죽을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冊 '나는 죽을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 저자 이근후 선생 인터뷰

http://www.mindpost.or.kr/news/articleView.html?idxno=5092

: 꿈이 없는 사람은 연료가 없는 자동차와 같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나이 들어감은 이루지 못할 꿈을 하나씩 버리는 과정 아닐까요.

“버린다는 말은 별로 좋지 않아요. 그래도 아직 실천할 수 있는 꿈을 쫓는다는 표현이 좋겠죠. 그럼 실천할 수 없는 건 버린다는 게 내포(內包)가 돼요.


: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하는 거지. 그리고 미래는 아직 닥쳐오지 않았잖아요. 지금 10년 뒤에 박 선생은 뭐 하실 거에요.”

모르겠습니다.

“모르잖아요. 아직 닥치지도 않은 것, 모르는 것, 이것을 지나치게 걱정하는 거야. 그러니까 내 결론은 현재에 충실하라는 거죠.”


: 삶의 고통은 미래의 불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미래를 불안해 하는 건 인간의 고유한 존재론적 질문이 아닐까요.

“그건 누구나 갖는 거지. 내가 안 가본 길을 가자면 불안하잖아요. 나보고 지금 서울 강남의 어디서 만나자고 하면 안 가봤으니까 좀 불안해. 그러나 내가 사는 이 근방 어디서 만나자고 하면 눈이 어두워도 상상해 가니까 별로 불안하지 않아. 그러니까 단지 가보지 않은 미래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불안이 있는 거예요.

불안이 있지만 건강한 사람은 그 불안을 피하지 않고 직접 경험해 보는 거죠. 첫 번째 경험이 중요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두 번, 세 번은 찾아가기가 쉬워요. 그래서 장애인들도 첫발 내딛기가 참 어려워요. 남이 나를 멸시하지 않을까, 또는 내 능력이 비 장애인에 비해서 떨어진다고 하면서 자격지심을 갖고 안 나서는 거에요.

그러지 말고 서툴더라도 나서야 돼요. 그게 출발점이 되면 거기서부터 한 단계, 한 단계 발전을 하는 거에요. 그건 내가 생을 마칠 때까지 발전을 하는 거요.”


2023년 4월 20일 목요일

페미니스트의 미래

뉴질랜드 남자들이 페미니즘 때문에 자기 나라를 버리고 탈출한다는 이야기가 인터넷 상에 떠돌던 적이 있었다. 

그것의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어느 남성이 쓴 '페미니스트의 미래'라는 아래 글을 읽고 나니, 비혼 여성이 많아지는건 사회 문제가 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페미니스트의 미래.txt

여혐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정말 강요된 것인가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미 인터넷 상의 남녀갈등은 루비콘 강을 건넜다. 이제와서 서로 설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사람이다. 그냥 서로의 놀이터에서 서로를 욕하며, 무의미한 데이터 낭비를 할 뿐이다.  

그러니 이건 그냥 내가 심심해서 쓰는 세상살이 일이다. 페미니스트에게 쓰는 글이기는 하나, 페미니스트는 이 글을 읽지 않을 테니 그냥 심심한 사람들이 읽으면 된다. 

왜 아직까지 코르셋을 쓰는 여성이 있을까? 왜 다이어트를 해야 하고, 화장을 해야 하고, 조신하게 말을 하는 걸까? 왜 여자들이 독립된 주체임에도 남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삶을 억압당하며 살려고 하는 걸까? 그럼 이제부터 설명하고자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코르셋은 여성에게 확실한 보상을 가져다준다.

결혼시장이다. 물~론 현재 결혼적령기의 성비는 비슷비슷하고, 어쩌면 남성이 더 많을 수도 있겠다. 그래봐야 1.1~1.2:1 정도.

90년대 즈음 사람들이 광기가 돌아서 임신한 아이가 여자면 낙태를 하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이야기지만. 어쨌든 사회에 남성이 더 많으니 결혼시장에서 여성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니 여성이 남자에게 갑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걸 단적으로 설명하는 단어가 < 번식탈락 >이다. 

난 처음에 이 말 듣고 무릎을 탁 쳤다. 여자들이 그래도 인터넷 헛으로 한 게 아닌지, 무슨 의미인지 대번에 알아들으면서도 남자들이 열받는 단어를 창조해 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다. 그 이유를 이제부터 설명하겠다.

'결혼 할 수 있는 나이의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건 전혀 다른 개념이다. 대통령이야 누구나 출마할 수 있지만 그게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닌 것처럼.

결혼 시장은 일종의 자유거래 시장이다. 뭐라고 휘황찬란한 말로 포장하든, 여권이 아무리 신장하든 간에 결국 자기가 낼 수 있는 값에 가장 좋은 물건을 사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아무리 성장한들 뚱뚱한 무직 여성이 전문직 미남을 만날 수는 없다.

결혼하고 싶은 상대를 '괜찮은 남자' '괜찮은 여자'로 정의하자.  

그럼 괜찮은 남자의 조건은 무엇일까?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나온다. 키 178 이상, 연수입 3600 이상, 서울 4년제 대학, 문제 없는 집안. 이건 여초 사이트에서 검색한 결과니 이견 없으리라 보겠다. 하나하나만 따져보면 별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아니 오히려 찾기 꽤 쉽다. 근데 저 조건이 모두 만족한 '교집합'을 찾으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저 조건을 다 충족하는 남자는 전체 한국 남자의 몇 %나 될까? 키가 178도 아니고 그냥 평균만 넘어도 된다고 하자. 그래도 벌써 절반이 날라간다. 평균을 넘으면 50%니까. 연수입 3600. 알련지 모르겠지만 사회 초년생의 수입은 남녀 별반 다를 거 없다. 성별 수입 격차가 본격적으로 나오는 건 여성이 임신을 하는 시기다. 즉 결혼 적령기의 남성에게 저 수입은 꽤나 문턱이 높다. 그래도 정말 넉넉잡아 20%로 잡자. (실제로는 상위 7%라고 하지만, 그 비율은 너무 희망 없는 전개가 되니까 좀 양보하겠다) 50% 곱하기 20%, 10%다. 남자 100명 중에 10명이 남았다. 서울 4년제 대학 혹은 국립대학이나 해외 명문대. 전체 분포로 보면 10% 미만이겠지만, 보통 명문대 출신이 수입이 높은 편이니 보정치를 넣어서 과감하게 50%로 치겠다. 5%, 남자 100명 중에 고작 5명이다. 문제 없는 집안? 이건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니 정말 문제 많은 집안만 제외하자. 80% 정도가 문제 없다고 보자. 

자, 결혼시장 중에 여자가 결혼하고 싶어하는 남자는 고작 100명 중 4명이다. 

자세히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수치는 절대 낮게 잡은 수치가 아니다. 정말 널널하게 잡은 수치다. 실제로는 저 수치보다 훨씬 낮을 확률이 높다. 거기다 술담배, 외모, 성격, 성매매 경험 유무, 전과 유무, 탈모 여부 등은 제외된 수치다. 근데 그 4명이 다 결혼시장에 나올까? 주변 여자가 미쳤다고 다른 여자에게 양보하겠나? 그런 조건의 남자는 미팅이나 맞선 나오기도 전에 제 짝 찾아서 일찍 결혼한다. 그래도 나온다고 하자. 그런 남자들이 '괜찮은 여자'에게 뭘 요구할까?

그게 바로 코르셋이다. 

얼굴 좋고, 몸매 좋고, 어린 나이, 사근사근한 성격에, 집안일 군말없이 잘 해 주는. 

물론 이 조건들이 쉽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괜찮은 남자'가 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보다 훨씬 널널한 걸 부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어차피 그런 조건의 남성들은 여성에게 맞벌이보다는 뒷바라지를 원하므로 여성의 사회적 스펙에는 까다롭지 않다. 여자가 여자에게 주는 '괜찮은 여자'의 기준이 지나치게 너그러운 점을 고려하더라도, 세상에 '괜찮은 남자'보다 '괜찮은 여자'가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며, 결혼시장에서 여자가 불리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럼 이야기를 돌려서, 너희들이 말하는 '흉내x지', 흉자가 전체 결혼시장의 몇 %나 될까? 정말 적게 잡아도 50%는 될 것이다. '깨어난 페미니즘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 특별히 어려운 일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괜찮은 남자'에서 '결점이 좀 있지만 그래도 용인 가능한 남자'로 바꿔보자. 키가 작거나, 수입이 낮거나, 학벌이 부족하거나 하지만, 그래도 참을 만한 수준의 남자들 말이다. 당연하지만 한남은 페미니스트와 결혼하고 싶어하지 않아한다. 정말 '깨어난 남성'이라도 페미니스트로 살아온 게 배우자 선택에서 플러스 요인이 되지는 못한다. 얘들이 남은 흉자와 결혼하게 된다. 결혼 생활이 여자가 꿈꾸던 것만큼 드라마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남들도 그렇게 사는 거지 뭐'하면서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자, 이제 결혼시장에는 '결점 투성이의 남자'와 '코르셋을 벗은 여자들'이 남게 된다. 키가 작고, 수입이 낮고, 집안도 엉망인 남자들이다. 어쩌면 성매매 해서 성병이 있을 수도 있고. 전과가 있을 수도 있고. 너희들이 말하는 소위 한남충이다. 물론 이런 남자들도 결혼을 하고는 싶어한다. 그래서 번식탈락을 피하려고 여자들에게 코르셋을 요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던가?

그런 남자랑 결혼하는 건 여자에게는 너무 위험부담이 크다. 게다가 용납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쪽팔리는 남자랑 결혼하려고 페미니즘을 한 건 아닐 테니까 말이다. 여자로서는 미칠 노릇이다. 그저 사회에서 요구하는 코르셋을 벗었을 뿐인데, 주변이 휑하니까. 워마드와 넷페미들 주변이 온통 한남충인 이유다. 그러나 아직 마지막 선택지가 남아있다.

결혼 포기다. 

솔직히 진지하게 고려해 볼 만한 일이다. 요즘같은 세상에 독신은 별 단점이 아닌 것처럼 보이니까. 근데 과연 그럴까?

괜찮은 사무직 일자리는 40대가 넘으면 슬슬 명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여자가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안정된 일자리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슬슬 노후 준비를 해야 한다. 앞으로 40년은 더 살아야 할 테니까. 당연히 여러분에게 위로가 되는 명품이나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된다. 

주변 친구들은 전부 육아 혹은 가정 이야기. 일반 주부와 미혼 여성의 세계는 여성과 남성만큼이나 다르다. 화제가 통일되지 않으니 어울려도 재미있지 않을 것이다. 결국 친구들이 부르지도 않고, 불러도 나가고 싶지 않아 여러분은 훨씬 외로워질 확률이 높다.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35살 넘은 여성은 그런 '결점 투성이의 남자'조차 거들떠보지 않는다. 결혼 포기는 선택처럼 보였으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강요가 된다. 

40살 넘은 독신 여성. 이제 더 이상 남자들은 당신들에게 코르셋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당신은 그냥 아줌마일 뿐이다. 기대하는 것도 없으니 요구하는 것도 없다. 물론 재혼 시장같은 특수한 경우도 있겠지만, 이런 곳 역시 여자에게 코르셋을 요구한다. 물론 독신 40대 여성이 행복하게 사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변 시선은 당신을 동정하는 눈으로 쳐다볼 것이고, 특히 감수성 넘치는 여성들은 이런 시선을 못견뎌하는 경우가 많다.

이게 바로 코르셋을 벗기 위해 여러분이 치뤄야 하는 '비용'이다. 

물론 이를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이 있을 수도 있다. 모든 여성이 일제히 코르셋을 벗어던지거나, 모든 남성이 페미니즘에 각성하던가, 여자만 죽는 전염병이 돌아서 성비가 심각하게 무너지던가, 어느 갓양남이라도 잡아서 결혼하던가. 그런데 어느 쪽이든 그리 확률이 높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살이는 그리 쉬운 법이 아니거든. 

'게임 이론'이라고 알련지 모르겠으나, 결국 결혼 시장에서 여성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대책은

'나는 코르셋을 쓰고 남들은 코르셋을 벗어 던지는' 경우다. 

그러면 이전보다 좋은 조건의 남자를 만나기가 쉬워지고, 누군가가 희생해서 얻어낸 페미니즘의 권리(가정일 분담이라던가 뭐 이것저것)도 누릴 수 있다. 웃기는 일이나, 결국 여성 권리 향상으로 가장 혜택을 누리는 것은 기성 사회 질서에 순응한 흉자다. 일선에 나서 한남과 맞서싸운 페미니스트에게 돌아가는 전리품은 그리 체감이 되지 않을 것이다. 당장 집에 돌아가면 당신 혼자 혹은 당신 부모님밖에 없는데 누구한테 무얼 요구하고, 무얼 얻어낸단 말인가? 그나마 20~30대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주장한다면 남자들이 성을 내며 맨스플레인이라도 해 줄 것이나, 40대 넘어가면 남자들은 당신을 그냥 히스테릭 노처녀 패배자 아줌마로밖에 보지 않을 것이다. 

왜 현실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20대와 30대가 주축이 되어 행동할까? 40대가 넘어가면 자기 앞가림하기 바쁠 뿐더러 아예 사회가 관심을 안가져주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물론 페미니스트인 당신이 맨스플레인인 나의 글을 읽으리라 기대는 안 한다. 이건 그냥 남자들끼리 웃고 떠들자고 만든 글이다. 그러니 악플을 달든 논리적 헛점을 들이대든 별 의미가 없다. 나는 그냥 내가 보는 현실을 말했을 뿐이며, 나와 의견이 다르다면 그건 그저 서로 보는 현실이 다를 뿐이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시간이 알려 줄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 마지노선은 당신이 35살이 되는 날이다. 

조금이라도 내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트페미나 워마드 같은 짓은 그만둬라. 모두가 그만둘 필요는 없다. 당신만 그만둬도 된다. 당신이 티만 안낸다면 남자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대신 결격사유 많아 보이더라도 가까스로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한남이랑 타협해라. 남은 진짜배기 페미니스트들이 대신 너를 위해 기꺼이 싸워줄 것이다. 

물론 그러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감히 페미니스트에게 한남의 말이 말로 들리기나 하겠는가? 근데 내가 틀렸다고 해서 나는 손해를 볼 일이 없겠지만, 만에 하나 내가 맞았다면, 여러분은 좀 많이 힘들 것이다. 그리고 그건 페미니즘이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다. 유감스럽게도. 

그래서, 당신은 몇 년이나 남았나?

딜러를 이겨라_에드워드 소프 저

 


: 그러니까, 공무원에게 뇌물을 찔러주고 총 수익에서 돈을 빼돌리며 카지노 수익으로 불법적인 돈벌이(마약, 매춘, 밀수)에 자금을 대고, 다툼이 생기면 살인을 저지르는 이런 자들이 카드 몇 장 가지고 속이는 일을 삼갈까? 물론 이 사람들이 정직한 인간들일 수도 있기는 있다. 그런데 말이다. 호구들은 속임수를 눈치 챌 확률이 백만분의 일도 되지 않고, 설사 속임수를 눈치 챘다고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상황이 이런데 퍽이나 정직한 인간들이 속임수에서 나오는 부가 수입을 마다할까?

: 카지노는 정직한데 모르고 속임수를 쓰는 딜러를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딜러들은 친구가 돈을 많이 따도록 속임수를 써서 하우스의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하우스가 수입액을 자주 점검하면 특정 딜러가 수입이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면 딜러는 다른 플레이어를 속여서 적자를 보충해야 한다. 

: 카지노의 이런 사기 행위에 대처하는 방법

내가 아는 최상의 방법(신문 배달 기법)이 지금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효험이 있다. 밑천을 똑같이 10등분 또는 20등분하라. 예를 들어 판돈이 200달러라면 20달러씩 10개로 나눈다. 테이블에 앉으면 20달러어치 칩을 구매하라. 20달러를 잃거나 20달러를 딸 때까지 게임 하라. 그런 다음 그만둔다. 1시간이 넘었는데도 계속 게임하고 있다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중단하라. 그리고, 다른 카지노로 가라. 상대했을 때 성적이 괜찮았던 카지노와 딜러를 다시 찾아라. 상대했을 때 성적이 시원찮았던 카지노와 딜러를 피하라. 이렇게 하면 속임수를 쓰는 사람이 누구든 큰 피해는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속임수에 두 번 당하는 일도 없게 된다.